나는 홍길동이다.
글쓰기 교육인줄 알았는데 블로그 수업이라, 나 당황하면 허둥대는데...어쩌지?
처음엔 내가 들을 수업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에 혹시라도 뭘 물어볼까 안절부절 그 자리가 너무나 불편했다. 블로그 중급 교육 과정이라고는 하였지만 나는 단순히 블로그 란 공간에 다양한 글쓰기를 배우는 곳이라 생각했다. 글쓰기가 목적이었지 블로그 운영엔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블로그를 운영 중인 분들의 모임이라는 단정하에 선생님께서 이것저것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지금 이 자리를 막차고 나가야하나? 이 강좌를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양보해야하나? 아님 나 요런 수준 밖에 안되는데 그래도 괜찮을까 라고 허락이라도 받아야 하나?.. 여러 생각들이 머리 속을 복잡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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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컴퓨터 관련 용어에 진저리치고 포기하고픈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별로 기억하고싶지않은 이십 년 전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때는 1991년, 대학 입학을 앞두고 컴퓨터를 교양필수로 배울 시기였다. 집이 시골이라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시내 컴퓨터 학원에 다녀야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 보급률이 낮았기 때문에 나는 컴퓨터 켜는 법도 몰랐다. 게다가 기계치에 가까워 일단 모르는 물건을 보면 침착함을 잃고 당황부터 하는 것이 나였다.
첫날부터 수업에 늦어 예상대로 컴퓨터 전원 버튼도 못 찾아 옆 사람에게 물어보는 굴욕(?)을 맞봐야했다. 모른다고 생각할수록 자신감은 더 쪼그라들고 뭘 실습할 때마다 우왕좌왕 옆 사람에게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웃지못할 일은 세번째 날 생겼다. 지금은 생소한, 도스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파일을 만들어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하는 내용이었다. 선생님께서 시범을 보이고 플로피 디스크에 띠지를 붙이고 이름을 쓰라고 했다. 칠판에 홍길동,1991년 1월 *일.
나는 단 한치의 의심도 없이 칠판 그대로 홍길동,1991년~이라고 따라 썼다. 그 디스크 안에 파일 만드는 방법을 실습하고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잘 했는 지 봐 주시고 계셨다.
의기양양,거만함까지 살짝 생겼던 내 자신감에 찬물을 끼얺었던 그 한마디...
"엥? 홍길동? 이름이 홍길동이에요? 하하하...홍길동 아가씨네!"
순식간에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스무 살도 안 된 나는 일순간에, 궁금증을 유발하는 미소녀가 아니라 어리버리 시골 소녀가 되어버렸다.
'어라,이거 뭐야? 그거 파일 이름이 홍길동 아니었어? 내 이름 적는 거였어?'
나는 나대로 파일이라기에 뭐 거창한 줄 알고 홍길동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나보나 생각했었다. 처음 배우면서 너무 오버한 결과다. 그 후로 컴퓨터 선생님과 수강생들 사이에서 내 이름은 홍길동 아가씨였다. 남의 속도 모르고 컴퓨터 선생님은 끊질기게 그 별명을 불렀다. 그땐 순진하고 착해서 그만 불러라 소리도 못했다. 그저 마음 속에 상처로만 가져갈 뿐...그 때 자기 학대가 너무 심했는 지 학원은 도스까지만 꿋꿋하게 다니고 그만두고 말았다.
블로그 첫 수업에 잊었던 옛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시키면 어쩌지? 모두다 잘 하는 사람인데 내가 끼여 있어 눈총받으면 어째? 하지만 다행이도 초보에 가까운 분들이 삼분의 일 정도는 있는 거 같아 그 분들에게 묻혀가고자 생각을 바꿨다. 동병상련이라고 그래도 비슷한 수준의 분들이 계셔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선생님 또한 기초부터 가르쳐 주셔서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뭐든 배우려면 무식하게 배워야 하지 싶다. 모르는 건 부끄러워도 물어보고 틀리면 또 물어보고 하면서 말이다. 외국어도 얼굴에 철판 깔아야 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수업을 계기로 십 수년 전의 낯뜨거웠던 추억이 완전히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른다고 그때만큼 부끄럽고 속상하지 않을 것 같다. 왜냐고? 이럴 때 붙여서 미안하지만, 난 수퍼 파워 아줌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