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케의 출산으로 기분 좋게 경주에 다녀오고 모처럼 다음날 늘어지게 잤다. 요즘 공부하는 게 있어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열심히 검색하고 있는 중에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마법에 걸릴 때가 임박해 단순한 복통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침대위에 드러누워 쉬면 괜찮을거라 여겼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가 끙끙 앓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며 이불을 움켜쥐며 아픔을 견뎌내고 있었다.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일하러 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배가 너무 아프다. 응급실 가야겠다"
급히 전화를 끊고 그 정신에 떡진 머리가 마음에 걸려 낑낑거리며 머리를 감고,말리고,옷을 갈아입었다. 아프다면서 움직이는 걸 보니 필시 죽을 병은 아니다 싶었다.
잠시 후 남편이 허겁지겁 들이닥치고 병원 가자 다짜고짜 팔을 잡았다. 머리를 채 빗지도 못하고 대충 가르마만 정리하고는 어기적어기적 따라나섰다.
아! 일요일 해운대! 차는 왜 그리 막히는지......우리가 가려던 병원 응급실은 교통체증 종결자, 유명S 백화점을 거쳐야 하였으니, 오! 하나님!!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세계 최대라는 그 백화점이 생겼을 땐 존재자체로 행복하더니 그땐 웬수가 따로 없었다.
한참 잊고 살았던 출산의 고통이 다시 오는 양 배를 부여잡고 아야! 음음! 신음소리에 애 낳을 때도 해본 적 없는 라마즈 호흡을 하면서 응급실 도착을 학수고대하며 버텼다. 정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육신을 힘들게 한다고 들 한다. 어떤 책에선 자식을 잃은 아픔을 마라톤을 통해 극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에 직면할 때 그 고통을 잊게 해 주는 정신적 학대는 뭐가 있을까?
크리스찬이므로 하나님을 부르고 찬송을 억지로 떠올리며 도로 위의 지리한 시간을 버텼다. 너무 아프니까 정신이 깜빡 혼미해졌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로 방해하는 차에 욕을 뱉기는 하였으나 다행히 남편은 내 고통 소리에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운전했다.
빨리 응급실에 도착하지 못해 초조한 만큼 응급실에 가도 바로 내 고통이 멈춰지지 않을 거란 사실이 더 절망적이었다. 일요일, 밀려드는 응급환자, 턱없이 부족한 의료진...그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응급이 아니면 언제 올 지 기약없단 걸 몇 달 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드디어 도착! 남편은 주차도 제대로 않고 차를 버리다시피하고선 나를 끌어내렸다. 혈압을 재고 문진을 하고 침대 하나를 배정 받아 드러누웠다. 통증은 점점 강도가 심해지고 신음소리는 점점 커져가도 관심을 갖는 의사는 없었다.
몇번이나 독촉을 해 간신히 증상을 이야기했으나 잠시 기다리란 말만 남긴 채 의사는 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화장실을 들락거렸으나 그 배가 아닌지 힘이 없어인지 일이 성사가 되지 않아 갈 때마다 허사였다. 그러나 변기에 앉아 있을 때 그 자세로 있을 때 통증을 견딜만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 곳은 공공 장소였으니 내가 전세 낼 상황도 아니질 않는가!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생고통을 혼자서 감당해내야 했다. 약도 없고 그 곳의 구세주인 의사도 오지않고 온전히 나 혼자서 내 몸을 괴롭히는 놈과 싸워내야 했다. 하도 소리를 내는 통에 누워 있는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픈 와중에도 그들을 보니 어찌 다들 편안하게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고통을 호소하는 인물은 나 밖에는 없어 보였다.
언니와 남편이 번갈아 가며 몇 번이나 나의 고통을 이야기 한 끝에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아!! 제발 뭐라도 좀 줘,제길!" "제발 이 고통을 멈춰주게 하란 말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병원 왔음 뭐라도 해 줘 안 아프게 해야 하는 거 아냐?"
끝도 없이 원망의 말이 튀어나왔다. 너무 아프다고 아우성치고 , 약 좀 달라고 보채고....
암 환자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한다. 너무나 무서웠다. 내가 감내하고 있는 고통도 견디기 버거운데 이보다 더한 놈들이 있다니......
의사가 다시 와서 통증으로 보아 요로결석이나 맹장이 의심스러우니 CT 를 찍어봐야겠단다. 아이고야~~사람잡네~~그거 찍으려고 또 기다려야 하고 결과 나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하고 그동안 약도 못쓰고 온전히 견뎌내며또또 기다려야 한다. 아이고~~징하다, 무섭다, 일요일엔 아프지도 못한다!
세 시간 넘도록 병원에서 처치를 받은 거라곤 식염수 한 통 맞은 거 밖에 없다. 아무리 아프다 아프다 해도 그들은 그들대로 너무나 분주했다.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 환자까지 들어오는 바람에 의사 샘을 만나려면 너무나 길고 아득한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질기고 질리게 괴롭히던 통증이 스르르 가시기 시작했다. 첨엔 산통처럼 잠시 후 다시 오겠지 싶었으나 언제 아프게 했냐는 듯 거짓말처럼 싹 없어졌다. 바쁜 의사를 붙들고 맹장 터지면 통증 멈췄다 다시 오냐고 물었으나 대답은 아니오였다. 이제 안 아프다고 했더니 의사도 황당하단 표정으로 과장님께 여쭤보러 가는 지(근거없는 내 생각) 1분 후에 다시 오겠다며 황급히 내뺐다.ㅋㅋ
거기서 또 삼십 분 넘게 기다렸다. 수액도 다 떨어지고 통증도 사라졌으니 집에 가도 될 거 같아 링거를 빼 달랬더니 알았단 말만 하고 또 함흥차사다. 서너 번 이야기 끝에 온 간호사는 퇴원 처리 후 뽑아 주겠단 말만 남기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이미 다 떨어진 빈 주머니를 꽂고 기약없이 기다렸다. 고통에 실핏줄이 터진 얼굴로 이젠 웃음도 나왔다. "살았다!" 안도하며.....
그사이 고성이 들렸다. 아마 나처럼 아파하는데도 속수무책으로 주구장창 기다려야 하는 불만 때문이었으리라.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응급체계의 열악함과 고통 중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환자와 응급실 종사자들의 고충을...
의사란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을 하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소득 전문직인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우리는 그에 걸맞는 댓가를 지불함에도 영원히 갑 일 수가 없다. 한마디라도 더 희망적인 말을 기대하고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주십사 간절히 원하는 우리에게 건조한 표정으로 답하는 그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응급실에 많은 의사 샘들을 배치해주세요~~제발!! 이건 누구에게 호소해야 한단 말인가? 정부인가 ,보건복지부인가 ,병원인가,아님 응급실을 기피하는 예비 의사들인가!
추측성 병명을 간단히 듣고 처방전을 받아들고 들어갈 때 와는 달리 두 다리로 꼿꼿이 걸어 퇴원했다. `이 뭐꼬?' 눈치없이 배가 고팠다. 이거야원 아팠던 사람맞나? 나도 모르는 새 내 고통 퇴치에 위장이 기여한 사실이 있는가? 그 놈 쫓아버리는데 지 에너지를 썼나? 아니면 뇌의 지령을 받고 암 생각없이 신호를 보낸기가?
두번 다시 그 곳에 발 들이지 않기 위해 내 몸을 보살피고 소식을 실천하며 긍정적으로 살도록 해야 겠다. 식탐으로 위장의 용량은 생각하지도 않고 마구 구겨넣었던 지난날이 후회가 되었다. 노화의 시작은 거스를 수 없나보다. 인정하며 내 몸을 보살피며 살아야겠단 다짐을 해 본다.
육체의 고통이란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길고 길고 긴 싸움이다. 그 고통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프지 말고 자연사하는 것이 소원이 될 수도 있겠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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